예전에 한때 미드에 잠깐 빠졌던 적이 있었더랬다. 우연찮은 기회에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미드 시즌1을 통째로 다운받아놓고 감상을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화가 넘는 드라마를 단 사흘만에 다 보고 난 후 였다. 밥먹을 시간도 아까워 비빔밥을 만들어다가 양푼을 끌어안은채 모니터 앞에서 먹어가며 관람한 결과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격증 시험이 코앞이었다.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컴퓨터를 끌 수 있었다. 아니, 그 동안 밀린 스타크래프트를 먼저 한 다음에 껐다. -_- 다행히 자격증 시험에 합격은 했다만 후유증은 남아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미드의 중독성"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그 이후 되도록이면 미드를 접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 유명한 "프리즌 브레이크도"도 보지 않고 넘길 수 있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또 며칠 잠수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기에.

 

후에 애인님(후에 마눌님으로 업그레이드됨)과 함께 또 다른 미드 "로스트"를 접했다. 매주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이것도 꽤나 잼나게 보나다 어느순간 그만 보기 시작했다. 로스트를 보신 분은 공감하겠지만 그 수습도 못할 떡밥을 줄기차게 던지는데다가 말도 안되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기가 질린 탓이다. 

 

  • 떡밥 : 복선과 비슷한 의미이면서 다른 단어. 시청자로 하여금 저게 뭐지? 왜 저렇게 되지? 라는 궁금증을 던져서 다음 화를 안 볼수 없게 만드는 고도의 장치. 차후에 나올 이야기의 열쇠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복선과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떡밥을 투척만 해놓고 전혀 해결이 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 낚시하면서 떡밥 많이 뿌린다고 물고기가 무조건 많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떡밥을 던졌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해결되리란 보장은 없다.

 

그 이후로는 진짜 미드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울산에 내려온 후 지인의 권유로 "테이큰"을 다운받아서 하드디스크에 넣어두었지만 한번도 재생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나서 틀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빠져들기 시작했다.

 

영화 테이큰의 이야기가 아니다. 10부작 미국 드라마, 테이큰이다.

 

C8486-01[1].jpg

 

Taken, 동사 Take의 과거분사인 동사다. 원형인 Take가 무수한 뜻을 가지는 까닭에 Taken을 한 가지 뜻으로만 생각하기 곤란하지만 드라마의 전체 내용과 결부시켜 본다면 "납치된"이라는 뜻이 가장 가까울 듯 싶다. 이 드라마는 미확인비행물체, UFO에 탄 외계인들에게 납치된 사람들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다코다 패닝 목소리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데 정작 다코다 패닝은 7화인가 8화쯤되어서 등장한다. 그 이전까지, 1화부터 6,7화까지의 이야기는 전부 다코다 패닝의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받는 이들끼리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UFO목격담과 납치담, 특히 로즈웰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흔히 UFO-정부 관련 음모론이라 불리우는 기기묘묘한 이야기들까지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포장되는 까닭에 이야기 한 화마다 던지는 떡밥이 예사롭지가 않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전개가 마음에 드는 까닭은 전에 보았던 "로스트"에서 당한 무수한 떡밥 투척, 그러고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에 너무 진저리쳐진 까닭이다. 테이큰에서는 그런 떡밥이 과도하지 않으며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수준으로 의문을 던져준다. 그러고나서 몇화안에 그 떡밥에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이야기 구조라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고 뭔가 이해가 가질 않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아, 그때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싶은 측면이 있다.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까닭은 10부작이라는 적당하면서도 충실한 이야기 길이 때문이다. 물론 한 편 한 편이 거의 두시간짜리 라서 실제로는 20부작쯤 본 듯한 기분이 들지만서도.... 질질 끌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은 놈이 되살아나서 말도 안 되게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도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게 참 맘에 들었다. 게다가 딱 스필버그틱하게도 끝나서 마지막 장면이 낯설지도 않았다.....

 

며칠전 도서관에서 "신의 지문"을 다시 빌려왔다. 어린 시절, "세상에 이런일이"와 더불어 나의 뇌내 망상을 책임져 온 좋은 음모론 책이다. 간만에 다시 보고 외계인오면 뭐라고 불러야 할지부터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미아리 Y고 출신이다. "미아리"가 주는 어감상 굉장히 후진 동네에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학교도 굉장히 후지다. 내가 그 학교를 나왔으니 누가 뭐라해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굉장히 후지다고. 요새는 또 어떨런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다닐때는 그러했다.

 

같은 이름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으며 운동장을 공유했는데 유독 초등학교만 굉장히 잘 나가는 구조였다. 사립 초등학교라서 그런지 그쪽 음악시간이 되면 리코더나 멜로디언 뭐 이런 소리가 들리는게 아니라 왠 현악기나 플루트(그게 플루트인지 피콜로인지 내가 알 순 없지만 암튼 관악기)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오죽 하면 "Y초등학교 부속고교"라고 학생들이 자평했겠는가. 초등학교 스쿨버스가 들어올 시간이면 짤없이 농구장을 비워줘야 했고 초등학교가 운동회라도 하는 날이면 점심시간에 운동장 나가는 것도 제한당했다. 암튼, 중요한건 이게 아니고....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수준별 이동수업을 했다. 해당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이었는데 나중에는 과학도 선택과목별로 이동수업을 했다. 귀중하기가 다이아몬드보다 더 소중한 쉬는 시간 10분이 책들고 이동하며 자리맡는데 (그것도 뒷자리 먼저 맡기 전쟁) 소요되기 때문에 이동수업은 짜증나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이것이 얼마나 무의미하냐면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수준차가 확연히 나기 때문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감히 선생의 수준을 가를 수 있겠느냐 하겠지만 내가 받던 이동수업의 선생님들은 겉보기에도 확 차이가 나는 수준이었다.

 

이를테면 수학의 경우....

 

수학의 S선생님, 남자분이었지만 여자반의 담임이라 그런지 여학생에게는 굉장히 상냥하고 남학생에게는 가혹한 분이었다. 이 분의 수업시간에 졸다가 걸리면 (혼나도 싸긴 하다;;;;) 끝날 때까지 문고리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물론 똑바로 서서가 아니라 몸을 등쪽으로 젖힌 채로 말이다.;; 그렇지만 S선생님의 수업은 꽤나 명쾌하고 이해가 수월하여 전체의 과정을 한 눈에 꿰뚫어 보게 하는 눈을 길러주는데 탁월했다. 미분을 암산으로 하는 방법이라든가 삼각함수의 전개가 왜 필요한지 설명해주시던 기억이 난다.

 

수학의 J선생님, 역시 남자분이며 굉장히 쾌활한 분이었다. 특유의 말버릇과 바지 치켜올리는 추임새는 모든 학생의 선생님 따라하기 개인기 1번 사례. 설명이 굉장히 자세하고 치밀해서 저수준의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도움이 되지만 진도가 도무지 나가지 않는 단점이 존재;; 숙제가 좀 많았다. 그렇지만 숙제를 해 오지 않는다고 특별히 뭐라 하기 보단 숙제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항상 강조. 내 생각에는 진도가 늦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 거 같은데;; 진도도 늦은 와중에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수업의 방향이 함흥차사로 빠지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좀 지루했을 것 같기도 하다.

 

수학의 K선생님. 아, 진짜. 잠깐 웃음 좀 마저 웃고... 서울대를 나오셨고 영어를 독학으로 전공하시어 영문소설을 직역으로 읽을 수 있는 분이라곤 하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이 분의 별명은 "칠뜨기"였다;;;; 요새 허경영보면 가끔 이 선생님 생각이 난다. 자기가 지은 노래가 하나 있는데 그게 아직 서울까지 안 와서 그렇지 남부지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현재 북상중이라고 항상 강조했다;; 애들이 그 노래를 불러달라도 조르면 이상한 춤과 더불어 뭔가 대폿집 아줌마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이하 생략. 도저히 글로 그 분의 아스트랄함을 소화할 수가 없다. 이 분이 굉장히 똑똑하시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본인이 너무 똑똑해서 그런지 애들에게 이게 왜 이렇게 되는지 설명을 해주질 못 했다. 천재는 둔재를 이해 못 한다는 그런 상황인지, 암튼 이 분한테 삼각함수 변환에 대해서 배웠었는데...... 난 도저히 그걸 이해 못 해서 나중에 대학수업들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K선생님은 문제를 풀면서도 문제를 읽기만 해도 답이 이미 나왔기 때문에 중간과정을 서술하지 못 했던 거야;;;;

 

내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고 모든 수학 선생님을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대략 이 정도로 구분하자면 어느 선생님이 우(優)반과 열(劣)반을 맡아야 할지 보이지 않는가? J선생님이라면 단연 열반을 맡아 미진한 진도를 세심하게 돌보며 수업을 진행할테고 S선생님이라면 중간수준의 학생들에게 수학의 재미를 붙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K선생님은 진짜 초특급 상위 1% 학생들만 가르쳐야 될 거 같다;; 진심으로.

 

근데 문제는 우열반 선생님의 배치가 분기별로 바뀐다는데 있다;; 뭥미.

 

내가 저 위의 선생님들을 모두 겪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처음에는 수학 우반이었고 첫번째 시험 이후 열반에 한번 내려갔다가 나중에는 계속 우반이었는데도 선생님이 계속 바뀌었다;; 우반 선생님이 1분기때는 J선생님이었다가 어떨때는 S선생님이었다가.... 특히 3학년 우반 수업 마지막 선생님이 저 K선생님이었다!! K선생님이 대폿집 색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나는 그냥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영어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내 수능때 수리영역1의 점수는 그야말로...... ( 물론 그것보단 DDR와 스타크래프트의 영향이 더 클런지도 )

 

우열반 편성, 혹은 수준별 이동수업에 대해서 찬반을 묻는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다. 학생들의 학업 능력에 수준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세분화하고 반을 나누다보면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자세를 길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우열반 편성의 운영이 저 따위로 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수업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등수별로 나뉘며 가르치는 선생님의 성향이 학생들과 전혀 맞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오히려 수업의 질이 하락할 것이고 집중도 역시 마찬가지다. 반대의 예로, 학생들이 직접 과목을 선택했던 과학 선택과목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잘 가르치고 인기가 좋았던 생물반이 북적북적였고 성적도 대체로 좋았던 반면 스스로 과열하는 데다가 가끔 정신이 실종하던 물리선생님반에는 진짜 물리를 사랑하는 애들만 모여서 오히려 성적이 더 잘 나왔다고 했다.

 

어설픈 운영은 때론 독이 된다. 그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말이다.

댓글
2009.11.05 09:33:54
아침형라이더
그래- 문득 고등학교때가 생각이 나는구나..
난 이렇게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는데, 잘도 썼네-

이동수업은 찬성은 하지만, 이동수업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특성화가 되면 좋겠지-
물리2 수업들었던 때가 기억나는구나.

역시 그래도 고등학생때의 꽃은 축제때, DDR과 SC 대회를 한거겠지.
네가 명함도 만들어서 팔았던거 같은데.. 그때가 그립구나-. 후훗
댓글
2009.11.05 10:39:23
키세츠
그당시 에피소드만 써도 꽤 될 거 같은데......

전에 한번 쓰다가 그만둔게 하나 있다. 일종의 회고록같은건데,
쓰다가 좀 웃겨서 그만 썼거든. 나중에 한번 올리도록 하지.

예전에 우리집에 놀러온 Y군이 우리집 거실 한켠에 쌓여있는 신문과 책 무더기를 보더니 그것의 부조화를 지적했다.

 

"좀 안 어울리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쌓여있는 신문더미는 동아일보였고 그 위에 놓여있는 책은 "여보, 나 좀 도와줘"였으니...

 

처음으로 신문을 구독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마침 신문 구독을 권하는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다. 회사에 출근해있는 내가 직접 이야기 하지 못하고 마눌님이 대신 구독을 신청했는데 거기서 말하길 처음부터 경향신문을 넣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상품권도 주고 당분간 구독료를 안 받을테니 일단 동아일보를 받고 몇달 보나다 경향신문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그때 바꿔준다고 했다. 결국 일주일에 이틀치 이상도 채 보지 않는 신문더미가 몇달동안 쌓여있었고 어제 드디어 신문을 바꾸어달라고 이야기했다.

 

오늘 아침, 현관을 열고 문가에 있는 신문을 가지고 들어왔다. 거실에 앉아 경향신문을 펼쳤다.